문돌이의 Hello, World!/현생복귀

내 나이 서른, 공기업으로 가기 위한 첫 직장.

길잃은 문돌이 2022. 1. 24. 21:26

내 나이 서른, 너무나 복잡한것들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간다. 이제 첫 직장을 구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는 서른이면 이제 시작이지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주변에서의 서른은 '신입사원의 마지막 나이'라는 은연의 압박이 사실 있었다.

정말 서른이 되어서도 준비가 안된다면 어쩌지 라고 생각했더 20대를 떠올렸다. 

 

1. 그 동안 뭐했어?

사실 난 26살에 어찌저찌 캐나다에 건너갔다가 돌아와 28살까지 창업을 했다. 그러다 주먹구구식의 업무에 한계를 많이 느껴 다시 학교를 가게 되었다. 교수님의 '너가 왜 아직 여기 있노?' 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29살이면 졸업 할 줄알았다.

 

자, 28살의 마지막 기말고사 과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혹시, xxx 수업 안들으셨나요?
네... 그런데요?
그거 전공필기라 꼭 들어야지 졸업이 가능합니다.
눼!?

 

맞다. 그렇게 나의 5학년이 시작이 되었다. 그렇게 29살 8월에 코스모스로 졸업을 했다. 많은 젊은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공기업을 준비했다. 이리 저리 둘러봐도 도서관에는 책상위에 올려져있는 NCS책들. 주변에서도 몇명씩 공기업에 붙었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우선, 공기업 어디든 들어가면서 자리를 잡아야겠다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28살 부터 준비했다. 아주 과감하게 위포트 1년치를 긁으면서 누구나 그렇듯 챕터1만 손때가 탔다. 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공부를 해서 그런지, NCS책을 펴는 날 보다 NCS책 위에 먼지가 안 쌓일 정도의 간격으로 책을 폈다.

 

안일함과 회피의 방안은 결국 시간이라는 비용만 지불하게 되어있다.  

 

 

 


2. 도전 + 도전 + 도전 = 또 다른 도전

그렇게 1년을 NCS공부를 어영부영(?)하고 1년간 공부했으니 이제 시험을 쳐도 되겠지라는 생각에 이리저리 쏘다녔다. 사실상 실업난이라는것을 살갗으로 느끼지 못했었으며, 시험장에서 확실히 느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퀭한 눈에 금방이라도 하품이 나올꺼같은 산소부족 뇌가 산소공급 버튼을 주구장창 누르는 모습이 뻔히 보였다.

 

 나는 지금동안 넣은 자소서를 보니 48개의 공기업에 넣었다. 그중에 23군대의 시험을 치러다녔다. 이 말은 2번은 지역에서 시험친것을 제외하고 21번은 서울에 갔다 왔다 하면서 비행기에 돈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시험 전날만 반짝이지 그렇게 악착같이 매달리지 않는 모습이 나에게 보였다.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미친듯이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고 담배한대를 폈을때 전율따윈 없었다. 다시 비행기 타고 부산으로 내려와야한다는 지하철 시간과 배고픔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사실, 23번의 시험중에 모든 시험이 떨어진건 아니다. 20번의 시험은 떨어지고 2번은 면접을 가게 되었다.

 

1.한국공항공사

2.경기도일자리재단

 

 

2가지 면접의 꿰뚫는 한가지.
관련 경력이 있으신가요?

 

자, 여기서 경력이 1년이라도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질문이 쏠렸다. 아니 나에게는 공통적인 질문밖에 오지 않았었고 면접관은 테이블 끝의 지원자에게 눈길이 가고있었다. 그렇다. 공기업의 신입은 진짜 신입이 아니였던것이다. 정말 신입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인턴경험이라도 있어야하는것이 맞다는 말이 여기서 나오는것 같다는 느낌 + 그래도 1년간은 경력이 정말 큰 도움이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면접을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던 사람이였다. 자기소개서는 그렇다 쳐도 NCS 필기만 통과해야 면접의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 모든 시간을 NCS에만 투자를 했지만 사실 그것도 최선을 다하지 못했었고 꾸역꾸역 턱걸이로 붙은 기회마저도 나의 장점을 드러내기 전, 경력자에게 면접관의 눈은 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3. 하나를 잡고 경력부터 쌓자

면접을 봤을때가 내가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29살 11월이였다. 그렇게 나의 서른이 성큼 다가왔다. 무언가 되었을 줄 알았던 서른이 다가왔다. 2022년 1월. 사실 아직도 난 행적직을 뚫을 NCS 실력이 되지도 못하고 한국공항공사도 행정직또한 아니였다, 경기도일자리재단 또한 행정직이 아닌, 공무직이였다. 자, 그럼 여기서 생각해보아야할 것이 있었다.

 

내가 다시 도전을 한다면 꼭 행정직이여야 할까?

 

내가 가진 경험을 가지고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라는 생각에 창업과 관련된 기관들이 떠올랐고 난 이제야 몇가지 공기업에 목표가 생긴것 같다. 그렇게 난 1월 부터 시작해서 창업과 관련된 보육센터 계약직을 찾고있었다. 사실 몇군데를 넣었지만 연락 조차 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일이 지나, 어느대학에서 면접을 보자라고 했고 부산에서 4시간 30분 거리의 지역이였다. 

 

고민 끝에 해당 지역을 가게 되었고 이마저도 나 말고도 몇명의 사람들이 면접을 준비하고있었다. 난 이때쯤 되서 포기한것 같았다. 인연이 있다면 같이 일을 하겠지라는 생각에 마음 놓고 들어갔던것 같다. 결국 다시 기차타고 내려오는길에 합격소식을 듣고 다음달 부터 나의 첫 직장이자, 대학직원으로 첫 커리어를 쌓게 되었다!

 

내 머릿속은 너무 복잡했다. 합격소식을 듣고 난 이후,

 

1. 내가 이 방향을 잡고 커리어를 쌓는게 맞는건가

2. 전공이 1도 포함이 안되어있는 직업을 가지는게 맞는건가? 

등등...

 

내가 너무 많은것들을 득과 실을 저울질 하는건가? 부산과 왕복거리도 그렇고, 연고도 없는 지역에 잘 지낼 수 있는건가? 너무 성급한 마음으로 잡아버린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그래도 서른으로 더 이상 후퇴할 곳은 없다 라는 마음이 많이 크다.

사수도 없고 센터에 나 혼자 일하는(?) 조직없는 곳에 혼자 덜렁 있는 일이고 외로움과의 싸움이 될 수도 있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버텨보려한다. (사실 IT공부가 너무 재밌어서 마치고 IT공부를 하고있다)계약직이든 정규직이든 이직이든 뭐든 부딛쳐야하는건 맞는것 같다. 언젠가 붙겠지라는 생각에 서른까지 왔다. 더이상 후퇴는 없다! 힘내자 세상 모든 서른이여!